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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책의 표지가 아주 예쁘고 두툼한게 가지고 다니면 왠지 청량한 대학생처럼 보일거 같다.
책 내의 묘사나 분위기도 청량한 여름이다. 숲이 많이 우거진 서늘한 여름.
분위기는 그런데, 안의 내용을 보면 뭐랄까 인간의 구린 구석을 구석구석 보여준다.
이 책에 좋았던 부분은 많고 좋았던 부분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뜨악했던 부분을 나열해보겠다.

1. 선생님은 사카니시군을 하인부리듯 한다. 운전을 시키고, 목욕물을 데우라고 하고, 차를 끓여달라고 하고, 지금 관점으로 봐선 완전 갑질이다.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시킨다. 심지어 자기 애인까지 챙기라고 함; 예전에 뉴스에 장군이 군인들 데려다가 자기 이사하는데 썼다고 보도한 게 생각났다.
2. 우치다씨. 직접적으로 묘사하진 않았지만 이 책에선 끊임없이 일을 잘하고 꼼꼼하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계속 말한다.
조카딸에게 치근덕대고, 얼마나 치근덕댔으면 소장님이 그 둘을 떼어낼 생각을 했을까. 마리코도 우치다가 자기를 갖고 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책에서 말한다. 게다가 선생님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말한 이야기 조차 우치다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비난아닌 비난이자 조언이다.
3. 세번째, 이것도 우치다에 관한 이야기인데, 우치다가 사카니시군에게 절대 사내연애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건 왜 그런거야? 특히 마리코랑 사귀지 말라고 한다. 흠.... 유키코한테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책의 끝부분에 후지사와씨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후지시와씨가 마리코랑 사카니시군이랑 결혼시키려한다고 우치다한테 말했다고 한다. 그걸 듣고서도 저렇게 말했나?
4. 선생님. 사실 이건 읽는 내내 불편했다. 꼭 손석희나 고은시인, 이외수 작가를 떠올리게 했다. 차분하고 지성인이며 이 시대의 구루처럼 여겨지는 사람들. 하지만 사실 뒤에서 애인을 뒀거나, 성추행을 하거나, 혼외자식을 두고 딴 살림을 차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지성이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도덕적 감수성이 떨어져 보인다. 선생님도 소아과 의사인 사모님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애인이 있고, 심지어 애인집까지 지어줬다. 얼마나 오래 사귀었으면 집을 지을 정도인가. 읽는 내내 약간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병원씬에서 그야말로 치정극을 보는 것 같았다. 후지사와씨가 영어발음으로 굴려서 '저는 파트너예요'라고 말하는 부분. 사실 선생님과 사모님의 관계가 자세히 묘사되지 않아서 그 둘이 예전이 이미 끝난 관계이고, 애인을 둬도 괜찮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끼는 바가 그렇다는 거다.
5. 마리코.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다. 사람이라는 말을 안 쓰고 여자라는 말을 오랜만에 써본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마리코는 우치다랑 꽤 놀아났을 것이다. 놀았다는 표현보다는 놀아났다는 게 어울려서 그렇게 씀. 둘이 주말에도 안오고 호텔도 가고 마리코가 집에도 데려가고 했으니 뭐. 어느순간 마리코도 자기가 이 사람 손에 놀아난다는 걸 알았다는 말을 사카니시군에게 말하기도 한다. 마리코는 사카니시군을 꼬시는데, 좋아하지 않으면서 꼬시는 걸로 보인다. 음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고 그냥 끌림으로 둘이 만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건 그냥 젊어서 보기만 해도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몸이 찌르르한 상태를 묘사한 것일수도 있겠다. 아니면 사카니시군이 마리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게 책에서 느껴지는 것일수도 있겠다. 마리코에 대한 피지컬적인 끌림 향기, 목소리, 행동만 말하지 그녀가 얼마나 좋고 나를 얼마나 충만하게 만드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쓰고나니까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약간 애정결핍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카니시군이랑 사귀면 애정결핍 걸릴듯.
6. 사카니시군은 젊어서 서툴고 멍청하다. 그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쪽은 유키코다. 그리고 마리코는 성적으로 끌리는 거 같다. 어찌돼었든 결혼은 유키코랑 했다. 몇십년 후 별장을 사서 들어왔을 때 그는 침대를 보고 마리코랑 뒹굴었던 추억을 회상한다. 읽으면서 이건 유키코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하는 힘은 곤충, 조류, 식물, 음식, 역사, 자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세밀한 묘사다. 긴 세월을 다루고 있음에도, 소설 속 시간이 유구하고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읽으면서 역시나 건축물을 글로 묘사한다는 건 정말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다.
잘 이해하지 못해서 몇번이고 다시 읽어 본 부분이 있고 그냥 어렴풋이 내 맘대로 상상해볼 뿐이다.
책의 마지막에 번역가가 여기 나오는 선생님의 실제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요시무라 준조라는 건축가다. 또 안토닌 레이먼드라는 건축가랑 짬뽕했다고 한다. 경합에서 최종우승을 한다 후나야마 게이이치는 도쿄대건축과 교수인 단게 겐조가 모델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지은 건축물들을 찾아보았다.
흠 비슷하군




건축관해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사생활이다. 그리고 아스풀룬드라는 건축가도 알게 되었다. 프랭크로이드라이트의 사생활과 선생님의 사생활이 비슷한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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